무고한 298명의 목숨을 앗아간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현장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참사가 빚어지고 이틀이 지난 19일(현지시각) 현재, 차마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든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현지 기사들은 전한다. 여객기가 떨어진 지점 주변에는 안전띠를 맨 채 처참하게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주검이 여행가방, 옷가지, 그리고 산산조각 난 비행기 잔해와 함께 널브러져 있다고 한다. 여객기 격추라는 만행을 저지른 집단이나 세력들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이들을 규탄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엄벌에 처할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한다.
말레이시아 여객기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상공에서 격추시킨 집단이 누군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반군 소행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추락 현장이 우크라이나 반군이 점령한 곳인데다, 반군 사령관이 러시아군 장교에게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말한 녹음테이프가 공개됐고,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점 등이 정황증거로 꼽힌다. 반군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게 서방 쪽의 대체적 시각이다.
서방 국가들은 이를 토대로 반군을 돕는 러시아 쪽에 압박을 넣고 있다. 특히 추락 현장을 통제하는 반군이 조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러시아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191명의 희생자를 내 최대 피해국이 된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시간이 없다. 당신이 정말로 도울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등도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다.
푸틴 대통령은 책임있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이런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반군이 진상규명에 충실히 협조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나라는 결국 러시아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러시아가 이를 피하면 뭔가 구린 데가 있어서 그런다는 의심만 키울 수 있다.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국제사회가 관여할 필요도 있다.
민족갈등과 이념대립 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공존과 공생,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의 중요성은 이번 참사로 더욱 절실해졌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국제사회가 이번 기회에 발 벗고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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