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황당한 ‘유병언 유령’ 검거 소동

등록 2014-07-22 18:38수정 2014-07-22 21:44

6월12일 전남 순천의 야산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이 22일 밝혔다. 변사체 발견 때 이미 부패가 심해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니 실제 사망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이다. 그사이 정부는 유씨를 잡겠다며 군 병력까지 동원해 해안을 봉쇄하고 전국적인 검문·검색을 벌였으며, 반상회까지 열었다. 유씨가 머물렀다는 경기도 안성 금수원과 주변 건물 등을 압수수색했고, 유씨의 가족·친인척·측근들을 범인 도피 등의 혐의로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기소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꼴이다. 바로 전날인 21일에는 검찰이 유씨에 대한 6개월짜리 사전구속영장을 재발부받으면서 “추적의 꼬리를 놓지 않고 있어 검거는 시간문제”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대체 어떤 꼬리를 쫓고 있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보력과 수사력 모두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그 무능이 황당하고, 그 결말이 어이없다. 이런 국가기관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

국가기관이 제 할 일을 못하면 어떤 참혹한 결과가 빚어지는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경찰과 검찰은 세월호 참사의 주요 책임자인 유씨를 찾는 과정에서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5월25일 유씨의 별장에서 유씨를 놓친 뒤 대대적인 주변 수색을 벌였다지만 정작 변사체는 한참 뒤 주민 신고로 발견됐다. 변사체를 발견한 곳이 유씨가 20일 넘게 머물렀던 별장 부근인데도 경찰은 유씨와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한 채 노숙자의 변사로만 처리했다. 주검 주변에서 발견된 가방이나 옷, 신발 등 유류품을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쉽게 알 수 있었는데도 놓쳐버린 것이다. 변사사건의 지휘를 맡은 현지 검찰 역시 정황과 유류품을 살피는 초동수사의 기본을 망각한 채 단순변사로 판단했다. 검찰과 경찰의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과 검찰 모두 기본 중의 기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대충 넘기는 잘못을 반복하면서 엉뚱한 ‘꼬리 잡기’에 수사력만 낭비한 꼴이다.

검경은 변사체의 디엔에이와 지문 감식 결과 유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조차도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씨가 순천 별장에 마지막 흔적을 남긴 5월25일 즈음에 숨졌다고 하기엔 변사체의 부패 정도가 비정상적으로 심하고, 사망 원인과 경위가 석연찮다는 이유에서다. 변사체 발견 뒤 신원 확인까지 40일이나 걸린 점 등을 들어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라면 그 자체로 위기라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이 유씨에게 있는 양 수사 분위기를 몰아 정부의 책임을 가리려 들었다는 의심이 파다한 터에 그런 불신은 더 위험하다. 유씨 사망의 경위를 제대로 밝히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가리는 수사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