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성 가축 질병들이 다시 축산농가를 괴롭히고 있다.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며칠 새 잇따라 발생해 관련 농가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게 생겼다. 방역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의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 전면개방 선언으로 가뜩이나 뒤숭숭한 농촌에 또 하나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런 만큼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돼지와 오리의 대량 폐사를 낳지 않게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경북 고령의 돼지농장에서 새로 구제역이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경북 의성에서 3년3개월 만에 확진 판명이 난 지 나흘 만이다. 방역당국은 두 지역 농가에서 기르던 돼지의 이동을 제한하고 증상이 나타난 돼지 700여마리를 우선 소각하는 따위 조처를 취했다.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동물보건기구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되찾은 지 2개월 만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날은 전남 함평의 오리농가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이 확인됐다. 해당 농가의 오리 4만여마리와 인근 500m 안에서 기르던 토종닭 2000마리가 살처분됐다. 특히 이번에는 조류인플루엔자가 7월에 처음으로 발생해 경각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에는 대체로 겨울이나 봄에 발생했다가 여름이 오기 전에 수그러들곤 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계절에 상관없는 위험질병이 된 것이다.
오리와 돼지 농가에 큰 타격이 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여름휴가철로 돼지와 오리 고기의 소비가 한창 많을 때다. 한달 뒤면 추석이기도 해서 농가들의 시름은 이래저래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 손실을 따지기에 앞서 애써 키운 오리와 돼지를 살처분해야 하는 농가들의 심정은 또 오죽할까 싶다.
정부는 아직 상황이 심각한 편은 아니라고 밝혔다. 긴급 예방접종 등을 잘하면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리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으니 농가와 힘을 합쳐 필요한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방심하다가는 3년 전 경북 영천 상황이 재발할 수 있다. 당시 구제역으로 350만마리의 가축을 살처분·매장하고, 2조8000억원의 재정지원을 해야 했다. 초동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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