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28사단 윤아무개 일병 집단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번져나가고 ‘입영 거부’ 움직임까지 나올 정도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가 적극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며 뒤늦게 허겁지겁 마구잡이로 대응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래서는 또 소 잃고 외양간 무너지는 결과만 나올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5일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리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다. ‘일벌백계’라는 판에 박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상황을 그만큼 구태의연하게 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 끔찍한 군대폭력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의 널뛰기 대응도 문제다. 군 수뇌부는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내막을 진즉 확인하고도 석달 동안 함구로 일관하다가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조차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시인했다. 그래 놓고 한 장관은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자 윤 일병 사건 보고 누락과 은폐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뒷북 대응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 국방부 감찰단은 윤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해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에 초점을 맞춰 추가 수사에 착수했다. 여론이 들고일어나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원칙도 중심도 없이 부산을 떠는 모양새다. 언제는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더니 이제 와서 살인죄 추가를 검토하겠다고 하는 이런 태도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국민의 감시와 폭로가 없었다면 사건의 진실을 얼마든지 뭉개고 갈 수 있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또 관련 지휘관들 상당수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이들에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할지 검토하겠다고 한 것도 갈팡질팡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을 일이다.
정부와 군이 임기응변으로 넘기려고만 해서는 국민의 신뢰는 신뢰대로 잃어버리고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도 세울 수 없다. 정부와 군 당국은 말을 앞세우기보다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육군참모총장 한 사람 물러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