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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정작 책임질 사람은 빠진 일벌백계

등록 2014-08-06 19:36

박근혜 대통령이 육군 28사단 윤아무개 일병 폭행사망 사건과 관련해 일벌백계를 외치자마자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사의를 밝혔다. 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의 부실 책임을 지고 이성한 경찰청장도 물러났다. 국민의 분노가 치솟고 있는 마당에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은 대책을 마련하는 일과 별도로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더 큰 문책을 당해야 할 사람은 자리를 보전하고 아랫사람이나 죄가 덜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지운다면 누구는 감싸고 누구는 내치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낼 수도 없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윤 일병 사건은 김 실장이 바로 국방장관으로 있던 때 발생한 사건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가장 크게 져야 할 당사자다. 더구나 사건이 일어난 뒤 전모를 알고도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김 실장은 윤 일병이 숨진 다음날(4월8일)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가해자들이 윤 일병을 전입 후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주요사건보고’를 받았고, 조사본부장의 대면보고도 받았다. 서면보고에는 폭력 내용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김 실장이 윤 일병이 전입해 계속 폭력에 시달리다가 사망했음을 사건 다음날 벌써 확인했다는 뜻이다.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었는데도 김 실장은 하급 책임자들만 보직해임하고 28사단장에게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징계를 제대로 하면 사건이 커져 밖으로 알려지고 국방장관인 자신에게도 책임 추궁이 돌아올 것을 우려한 탓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더구나 윤 일병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만에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비극이 또 터졌다. 두 사건은 모두 김 실장이 국방장관으로 있을 때 일어났다. 김 실장은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해 국기를 흔들었던 2012년 대통령선거 때도 국방장관이었다. 이렇게 책임져야 할 일이 줄줄이 걸려 있는데도 자리를 지킨다면, 대선개입과 관련해 입막음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충분히 나올 만하다.

이성한 경찰청장 사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병언 수사 부실의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이 물러났다면,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의 수장인 김진태 검찰총장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수사의 기본도 확인하지 않고 대충 넘긴 잘못은 검찰 쪽에 더 많다. 검경 공조의 실패로 빚어진 수사 혼선의 책임을 황교안 법무장관 등에겐 묻지 않고 경찰청장 혼자 지도록 하는 것은 책임의 경중을 따져볼 때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끝낸다면 그것 자체로 또 의혹을 더하는 일이 된다. 일벌백계를 앞세우는 박 대통령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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