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에 군사적으로 재개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8일 이라크의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가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 아르빌로 진격할 경우 공습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오바마는 지상군을 재파병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공습 결정으로 미국은 2011년 12월 이라크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미군을 철수시킨 뒤 31개월 만에 다시 군사행동에 나서게 됐다.
미국은 이라크 안 미국인을 보호하고 아르빌 인근 소수종족 야지디족을 학살 위기에서 구출한다는 것을 공습 명분으로 들었다. 미국이 내세우는 이유가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다. 반군인 이슬람국가가 카라코시 등 이라크 기독교도 집단거주지를 장악한 뒤 10만여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아르빌 인근의 소수종파인 야지디족 수만명도 반군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점을 들어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라크 상황이 인도적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도 “이라크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노력”을 강조했다. 전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회의를 열어 이슬람국가의 공격을 규탄하고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덜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했다. 미국으로서는 이라크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최소한의 명분과 근거는 갖춘 셈이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에 견주어 볼 때 미국의 공습 결정을 인도적 결단이라고 봐주기 어려운 면이 있다. 미국은 지난달 이스라엘이 가자를 포격하고 지상군을 투입해 민간인을 학살할 때 팔짱을 낀 채 수수방관했다. 또 지난해 시리아에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수많은 반정부 쪽 민간인들을 학살했을 때도 개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굳이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자국의 이익 수호에 본뜻이 있음은 분명하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친미 정권을 세웠으나 극심한 종파 갈등과 내전의 혼란으로 이라크는 만신창이가 됐다. 결국 반군 이슬람국가의 도전으로 정권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에 몰리고 있다. 미국의 공습 결정은 친미정권을 반군의 위협에서 보호하려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익이 되면 무슨 명분이든 만들어 개입하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아왔다. 이번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전쟁의 원죄가 있는 미국은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바르게 선택해 처신하기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