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청와대에 열린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는 애초 이 기구 설치 계획이 나왔을 때부터 제기됐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과 정신을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안을 논의해 달라”는 ‘의제’를 내놓았고, 정부 쪽 관계자들은 이 의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통일준비위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 역할을 하기보다는 대통령 들러리 노릇이나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기구의 정부 쪽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안하무인적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류 장관은 민간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5·24 대북 제재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문제를 꺼내자 “통일준비위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일축했다고 한다. 애초 이 기구를 설립하면서 내놓은 취지가 ‘통일 문제에 대한 초당적 협력’이니 ‘다양한 목소리 수렴’이니 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 행동이었다. 통일 문제에 대해 관점이 다른 이야기도 들으며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하지 않으려면 뭐하러 야당 인사들을 민간위원으로 위촉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이날 회의의 의제로 내세운 드레스덴 선언을 다루는 방향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내놓은 이 선언은 남북문제의 인도적 해결 등 나름대로 전향적인 대북제안을 담고 있으나, 북한은 심각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를 두고는 선언문 안에 담긴 “굶주림에 떠는 아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는 등의 거친 표현들이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등의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어쨌든 북한은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마저 드레스덴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거절할 정도다. 그렇다면 통일준비위는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 조처 연구라는 공허한 과제에 매달리기보다는 오히려 정부와 한걸음 떨어져서 북한의 거부 이유 등을 면밀히 살피고 이를 바로잡는 방안을 찾는 게 더 기구의 설립 취지에 부합해 보인다.
통일준비위 설치에 대한 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한 가닥 기대를 거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 역할 가능성이다. 정부가 직접 하기 부담스러운 결정을 위원회가 대신 하는 등 마음만 먹으면 활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통일준비위는 결코 대통령의 들러리 노릇이나 하라고 만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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