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초상집 분위기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쏟아지면서 7·30 재보선 패배로 가뜩이나 위기에 빠진 새정치민주연합은 거의 빈사지경이 됐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잔칫집이나 같다. 이번 여야 협상 결과가 어느 쪽의 승리와 패배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으로서도 변명할 말은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몽니를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고집을 꺾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특별법 협상을 무작정 끌고 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도 됐을 것이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0일 “처음부터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에 있다고 봤다”며, 야당 추천 인사 5명과 유가족 추천 인사 3명을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 큰 성과임을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것이 수사권 문제에서 야당의 ‘백기 항복’을 상쇄할 만큼 값진 수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라는 세월호 특별법의 애초 제정 취지에 비춰보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주는 것이 백번 합당했다. 그리고 그것이 영 여의치 않다면 수사권만 갖거나, 아니면 최소한 야당이 특별검사 추천권 정도는 가져왔어야 옳았다. 이런 것이 정치에서의 양보이고 타협이다. 그런데 야당은 그동안 핵심 쟁점이던 수사권 문제에서는 무력하게 손을 놓아버리고 뜬금없이 진상조사위 구성을 업적으로 내세우고 나섰다. 게다가 진상조사위가 증인채택권이나 자료요구권 등을 갖는다고 해도 조사대상자들이 이에 불응하면 별도리가 없다는 것은 과거 경험이 잘 말해준다.
지금 야당은 진퇴양난의 처지다. 여당과의 합의를 깨고 다시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도 겸연쩍고, 그렇다고 여야 합의를 그대로 밀고 나가기도 어려운 곤혹스러운 형편이다. 하지만 야당이 이 시점에서 다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지닌 중요성과 의미다. 그리고 이번 여야 합의로는 확실한 진상규명을 기대하는 게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라는 점이다. 틀렸다고 생각할 때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용기다. 11일로 예정된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면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를 따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이는 당의 민주적 운영 원칙에도 부합한다. 유권자는 야당의 투쟁 일변도 방식도 싫어하지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야당은 더욱 경멸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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