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학교 앞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업체에 심의위 출석권을 주고,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경우엔 ‘주요 사유’를 적시하도록 의무화하는 훈령을 제정했다고 한다. 학교 앞에 호텔이 들어설 수 없도록 쳐놓은 빗장을 조금씩 풀어주는 내용들이다.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우선, 업체 로비 통로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학교 근처에 숙박업소를 지으려면 학교환경정화위원회(정화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업체가 정화위에 출석하면 교육당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화위원 인적사항과 심의 내용이 유출될 수 있다. 업체로선 위원들에게 로비를 펼 수 있는 절호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지금은 해당 학교의 교장에게만 정화위에 출석해 발언할 권한을 준다. 정화위가 기본적으로 업체의 자료와 의견을 바탕으로 열린다는 점에서 이해 당사자인 학교 쪽에도 충분한 설명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허가 여부를 통보할 때 ‘주요 사유’를 별도의 서식에 써넣도록 한 것도 업체에 유리한 조처다. 업체가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앞 호텔’에 ‘불허’ 결정 내리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교육부 훈령은 3개 학교에 인접한 서울 경복궁 옆에 7성급 특급호텔을 지으려는 대한항공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란 의혹의 눈초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일련의 과정이 이런 시선을 뒷받침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청와대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규제완화 건의를 받은 이후 국회 시정연설에서 관광진흥법 개정을 촉구했다. 앞서 정부는 유흥시설이 없으면 학교 앞에도 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이 강력히 반대해 현재로선 이 법안 처리 전망이 불투명하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이번 훈령은 ‘학교 앞 호텔 건립’의 우회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 취임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학교 앞 호텔이나 화상경마장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가 황 장관 취임 직전인 5일 훈령을 서둘러 공고한 것도 황 장관의 발언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된다.
훈령을 만든 주무부서는 교육부 학생건강안전과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 학교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방지하는 데 앞장서야 할 부서가 업체의 호텔사업을 거드는 데 앞장서는 게 말이 되는가. 아직 검토기간이 남아 있다. 황 장관은 이 훈령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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