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가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이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걸리지 못하게 되자 출품 작가들이 잇따라 작품을 철거하고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5·18 광주정신을 걸고 마련한 특별프로젝트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더 안타깝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비엔날레 창설 20돌을 맞아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특별전을 마련했다. 홍 작가는 5·18 광주항쟁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하나로 엮어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세월오월>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형상화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의 요구로 홍 작가는 박 대통령의 얼굴을 닭으로 바꿨지만 전시는 유보됐다. 이에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인 윤범모 교수가 사퇴하고 특별전에 작품을 낸 이윤엽·정영창·홍성민 작가가 “전시 유보는 광주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11일 작품을 철거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5·18 정신의 핵심을 이룬다. 설령 작품의 풍자 강도가 세더라도 그런 비판을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전시 취지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세월오월> 전시 유보는 ‘표현의 자유’라는 예술 창작의 보편적 정신에 비춰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행정이 예술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홍 작가의 작품에 수정을 요구했고 홍 작가가 그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한 뒤에도 ‘닭으로 수정한 부분이 탈부착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진정한 수정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억지스러운 이유를 들어 전시 유보를 결정했다. 이것은 명백한 창작 자율성 침해 행위다. 광주시와 재단은 홍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경우 정부 예산이 삭감될 거라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사퇴한 윤범모 교수는 이런 걱정에 공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 이래 원칙이 된 예술정책의 기본을 흔드는 일이다. 또 이런 우려 때문에 알아서 굴복했다면 광주시는 5·18 정신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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