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세월호 특별법 장기표류가 현실화할 조짐이다. 국회 본회의가 잡힌 18일에도 여야 원내대표는 해법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 13일 본회의에 이어 연달아 처리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4개월이 넘었지만 진상규명의 첫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야당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는 처지다. 정치 부담을 감수하고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파기한 마당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야당에 유족의 요구를 외면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새누리당은 핵심 쟁점인 특검 추천권 문제를 두고 ‘전례가 없다’는 등의 핑계를 대는 모양이다. 하지만 기울어진 배 안에서 아이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건 전례가 있는 일인지 묻고 싶다.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법안의 세부 내용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여당이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 실제 속사정은 청와대를 의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별법의 핵심 쟁점은 모두 청와대와 연관돼 있는 게 사실이다. 진상조사위가 수사·기소권을 확보하면 칼날이 청와대를 향할 가능성이 있고 특검 추천권도 청와대와 무관하지 않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관련된 문제를 청와대의 ‘승인’ 없이 양보하길 기대하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김무성 대표가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주겠다고 제안했다가 입을 닫고 있는 것도 청와대의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월호 정국’의 출구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대통령이 나서고 청와대가 서두르면 금방이라도 풀 수 있는 문제다. 수사·기소권이든 특검 추천권이든 청와대가 한 발짝만 물러서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순식간에 타협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설 명분도 충분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담화에서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자”며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한다”고 밝힌 바 있다. 희생자들 이름을 부르며 눈물로 약속했던 일이니 대통령이 나선다고 모양새가 나빠질 이유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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