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20일 여야가 전날 재협상 끝에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안을 공식 거부하면서 특별법 처리가 총체적 난기류에 빠졌다. 1차 합의 때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게 꼬여버린 것이다. 당장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국회 위의 유족’이니 ‘특별법 발목 잡는 유족’이니 하며 유가족들에게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과연 정치권의 합의를 외면하는 유족들이 너무한 것인가, 아니면 유족들이 동의하는 특별법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치권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는 이런 질문들과 마주하고 있다.
우선 지적할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어처구니없는 헛발질의 반복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1차 협상 때 유족의 동의 없이 덜컥 합의를 해주었다가 호된 후폭풍을 겪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당연히 유족들과 긴밀히 상의하면서 여당과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야당이 과연 유족들과 소통을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야당의 뒤늦은 유가족 설득 노력도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재협상으로 야당은 신뢰와 책임 등 모든 면에서 정당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돌이키기 힘든 치명상을 입었다.
새누리당은 ‘더이상의 재협상은 없다’는 기조 아래 “유가족을 100% 만족시켜줄 수 있는 안은 없다”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를 조사할 수 있느냐” “유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완구 원내대표) 따위의 말로 화살을 온통 유족들한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꼭 진실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태도야말로 유족들의 불신이 증폭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유족들도 ‘100% 만족’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원안이기는 하지만 특검 임명 절차에서 어느 정도 요구가 충족되면 합의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유연성은 갖고 있었다. ‘진상조사위가 국회 몫 특검추천위원 후보군 10명을 추천하고, 이 중에서 여야가 4명을 추리는 방식’ 등을 비롯해 나름대로 유족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최저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해자론’은 더욱 고약하다. 지금 특검 임명 절차 등을 놓고 여야 정치권, 유족들 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것은 결국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책임 소재 규명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조사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지지를 받는 특검이 임명되면 과연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가능할 것인가. 이완구 원내대표의 말을 뒤집어보면 오히려 ‘가해자가 수사를 주도하는 것이 더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특별법에서 유족들의 동의는 가장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이다. 정치권이 합의안을 밀어붙여 그냥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유족들의 동의 없는 특별법 시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실체가 모호한 국민까지 들먹이며 ‘유족 대 국민’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으나, 이번 사안에서는 차라리 ‘국민보다 유족이 우선’이라고 말해야 옳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의 표류 상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은 재재협상을 하든 아니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진심을 가지고 유족을 설득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특히 유족 설득 책임이 마치 야당 몫인 양 수수방관하는 새누리당이 과연 집권여당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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