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터에 지진 가능성이 있는 활성단층이 여럿 있음을 정부가 사전에 알고서도 건설 허가를 내준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방폐장 부지 안에는 활성단층이 존재하지 않으며, 부지 안에 존재하는 소규모 단층에 대하여 안전하게 설계와 시공을 마친 만큼 안전성에는 문제없다’고 발뺌만 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이 입수한 ‘2008년 경주 방폐장 안전성 분석보고서’를 보면, 방폐장 터와 그 인근을 가로지르는 활성단층이 다수 존재하며 특히 터 인근에는 활동성 단층도 있다. 활성단층은 지진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며, 활동성 단층은 그중에 과거 5만년에 1회 이상 또는 50만년 이내에 2회 이상 단층운동을 한 증거가 있는 단층이다. 지진 가능성이 훨씬 큰 단층이라는 얘기다. 환경운동연합이 입수한 월성원전 1호기 스트레스테스트 수행평가서도 활동성 단층이 규모 5.2의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방폐물을 보관하는 땅속 구조물을 사일로라고 하는데 경주 방폐장의 경우 이 사일로는 규모 6.5를 견디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하 구조물은 지상 구조물과 달리 같은 강도에서 훨씬 큰 충격을 받는다. 지진이 나면 깨질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환경운동연합이 밝힌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경주 방폐장 터는 방폐장을 건설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기술기준을 보면 “처분장은 활성단층 지역이나 그런 지역에 인접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기준을 위반한 내용을 담은 분석보고서가 건설·운영 허가를 얻는 과정에서 제출됐는데도 규제당국은 아무런 제재 없이 2008년 7월31일 건설·운영 허가를 그대로 내주었다. 활성단층의 존재를 알고도 허가를 내준 규제당국의 위법성을 조사해야 마땅하다.
경주 방폐장은 그동안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암반의 단단한 정도에 대한 평가가 왜곡됐음이 드러났고, 하루 3000톤에 이르는 지하수가 유출되고 지하수 이동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문제가 확인됐으며, 여러 차례 설계변경을 하고 공사기간을 4번이나 연장했다. 그런 중에 방폐장 터가 활성단층대라는 사실까지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관계당국은 정보를 공개하거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주 방폐장 터 선정에 성공했다고 86명이 훈장과 표창까지 받았다. 정부는 방폐장 건설을 중단하고 허가 과정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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