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차벽’ 유가족 봉쇄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2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사흘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가족들이 경찰이 쳐놓은 차벽에 둘러싸여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참으로 야멸차고 매정하며, 독하고 냉정하다.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유족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고작 한다는 말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는 말뿐이다. 그리고 유족들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온 날 민생 행보를 한다며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떠나버렸다. 정말 ‘대단한 대통령’이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국가 지도자는 모름지기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은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그들의 눈에서 더욱 피눈물을 짜내고 있다. 심지어 경찰은 유족들의 밤샘농성을 막기 위해 깔개와 비닐 등의 유입마저 막으려 했다. 국민이 아스팔트 맨바닥에서 자야 직성이 풀리는 게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이 나라 경찰의 본모습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냉대와 멸시 속에서 “우리가 마치 벌레가 된 느낌”이라는 유족들의 한탄까지 나왔겠는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고, 화나는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5월16일 청와대에서 유족들을 만났을 때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유족들이 원하는 특검,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회를 움직여 유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만들 수 있음을 잘 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며 딴소리를 한다. 이런 말 바꾸기의 달인을 두고 누가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는가.
새누리당이 한사코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막는 속사정이 사실은 ‘박 대통령 보호’에 있음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아리송한 행적 등이 낱낱이 파헤쳐져 박 대통령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 대통령은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고,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더 이상 특별법 제정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해선 안 된다. 자신이 제대로 된 특별법의 걸림돌이 돼서는 더욱 안 된다. 야당 쪽에서 제안한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포함해 해법을 찾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무엇보다 유족들을 하루빨리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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