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증가 속도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26일 내놓은 통계를 보면, 6월말 현재 가계부채(가계신용) 잔액이 1040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5분기째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우리 경제규모 등을 고려하면 가계빚은 아직까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이런 안이한 태도로 가계부채 문제를 관리하면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진단하려면 절대 규모보다 증감 추이와 질적 구조의 변화를 봐야 한다. 가령 빚이 늘어나더라도 가계소득이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가계빚은 소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한은과 통계청의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2분기 이후 1년 동안 가계부채 증가율은 6.2%인데 가계소득은 2.8% 증가에 그쳤다. 가계부채와 가계소득의 증가율 격차도 올해 들어 1분기 1.4%포인트에서 2분기에는 3.4%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도 더 나빠지고 있다. 2분기의 가계대출 증가를 금융권별로 살펴보면,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나 대부업 사채 등 긴급 생활자금 대출의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이런 생계형 대출에 의존하는 가계는 또다른 빚으로 빚을 메워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빚의 수렁에 빠진 취약계층이나, 소득보다 빚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가계가 늘어나면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가뜩이나 침체에 빠져 있는 민간소비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스런 상황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뒤에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 등 확장적 금융정책을 펴면서 가계의 빚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완화된 8월 들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예년 같은 기간보다 갑절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소득 증가 속도에 맞춰 조절되기는커녕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가계든 기업이든 빚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경제위기의 잠재적 위험요소가 된다. 정부의 거시정책은 이런 위험요소를 잘 관리해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계에 빚을 권장하며 부동산 경기를 띄우겠다는 발상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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