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6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하마터면 또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뻔했는데 그런 일은 피한 것 같아 다행이다. 김씨가 빨리 건강을 되찾아 둘째딸 유나가 더는 마음 졸이지 않게 되길 바란다. 김씨의 호소로 문재인 의원도 9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이제 ‘세월호 정국’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게 됐다.
가족대책위는 상황이 크게 진전했거나 세월호 특별법 타결이 임박해 김씨가 단식을 중단한 게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협상이 진전되지 않아 특별법이 언제 타결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전’에 준비하고자 단식을 풀었다고 설명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이란 기조에서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김씨의 오랜 단식에도 바뀐 건 별로 없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진상규명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나서야 하는 기막힌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바라는 건 오직 진상규명뿐’이란 유족의 줄기찬 외침에 귀를 틀어막은 채 보상문제를 들먹이며 본질을 호도하거나 김씨가 호화로운 취미라도 즐기는 것처럼 사생활을 캐고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한 번이라도 만나달라는 유족의 거듭된 요청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특별법과 관련된 진전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의 단식 중단은 ‘세월호 정국’을 푸는 중대한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다. 단식을 풀었다는 것 자체가 극한 대치를 누그러뜨리고 타협의 물꼬를 트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과 청와대, 야당과 유족은 어렵게 마련된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도 꼬인 매듭을 풀지 못하면 해법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새누리당은 9월1일 유족 대표와 세번째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유족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새누리당 태도는 평가할 만하다. 대화를 하려면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하자 새누리당에선 ‘새누리당이 가족들과 두 차례 만난 성과’라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사실과도 다르거니와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다. 새누리당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의 일침을 되새겨야 한다.
정기국회 턱밑이다.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세월호 이후’를 향한 걸음을 떼기 어렵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난 세월호 사건에 집권당이 무한책임을 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책무다.
새누리당이 모처럼 마련된 ‘정치의 공간’을 살리려면 미리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지 말고 유족의 요구를 원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새누리당이 특별법을 놓고 유족과 밀고 당기며 물건값 흥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볼썽사나운 일이다. 이제 공은 정부·여당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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