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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노동 후진국’ 조장하는 사법부

등록 2014-08-29 18:18

우리 헌법 33조는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신장을 보장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앞다퉈 노동자의 경제적 형편과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법부에서는 헌법적 가치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법원 3부는 2009년 철도노조의 파업을 철도공사(코레일)가 예측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파업을 이끈 당시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2011년 대법원 판례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2011년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파업 노동자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놨으나, 이번에 대법관 4명으로 짜인 소부에서 이를 사실상 허물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례에 따라 앞으로 정당한 파업권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교섭과 찬반 투표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파업이더라도 회사 쪽 업무에 지장을 주면 불법이 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에 대해 법적으로 근로자의 자격을 인정한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사례도 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9명이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취소 소송에서 사용자 쪽 손을 들어줬다. “회사와의 위탁계약으로 일하는 학습지 교사는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게 판결 이유다.

이로써 무려 2000일 넘게 농성을 하며 고단한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교사들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라는 지위조차 갖기 어렵게 됐다. 노동시장과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면서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사법부는 이런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직시하고 법으로 보호하기보다 외면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명색이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도 노동권 보장 수준에서는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5월 발표한 세계노동자권리지수(GRI)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39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5등급을 받았다. 이는 ‘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고 법적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 부여되는 등급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본다면서 이런 오명을 언제까지 짊어지고 갈 것인지 정부와 사법부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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