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의 ‘원전 유치 신청 철회 주민투표’ 요구가 끝내 거부당했다. 국가사무는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며 원전은 국가사무에 해당한다고 안전행정부와 삼척시 선관위가 유권해석을 내린 탓이다. 주민참여 확대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주민투표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잘못된 결정이다.
우선 안행부와 선관위의 유권해석 자체에 문제가 있다. 삼척시의 주민투표 요구는 원전 건설이 아니라 유치 신청 철회의 찬반을 묻는 내용이다. 유치 신청의 주체가 삼척시이므로 당연히 자치사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신청이 자치사무라면 철회 또한 자치사무임은 너무도 명백하다. 삼척은 아직 원전 터로 확정되지 않았고 후보지 상태에 불과하다. 국가사무가 시작됐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삼척시의 원전 유치 신청 철회엔 시민 압도적 다수의 뜻이 담겨 있다. 2010년 삼척시의 유치 신청 자체가 주민투표 실시를 전제로 한 ‘조건부 신청’이었다. 최근 삼척시의회는 ‘원전 유치 신청 철회 주민투표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62.4%의 지지율로 당선된 김양호 시장의 제1공약이 ‘원전 백지화’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 문제가 대두하면서 주민 의사가 급변한 것이다.
다른 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방폐장을 선정할 때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방폐장보다 훨씬 위중한 시설인 원전에 대해서만 주민투표를 막는다면 논리적 모순이요 입법 미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전 건설에 앞서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한 ‘전원개발촉진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설령 원전 문제가 국가사무라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해당 분야 장관이 요구하면 얼마든지 주민투표를 추진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를 쓰고 주민투표를 막으려는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주민투표를 시행하면 유치 신청 철회로 결론날 것이 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안에서 주민 뜻을 무시하고 방폐장을 밀어붙였지만 엄청난 갈등 끝에 결국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경주에선 주민투표를 통해 비교적 순조롭게 방폐장 유치를 확정지었다. 원전 유치 같은 민감한 문제를 주민 다수의 뜻을 거슬러 추진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원전 유치는 지역 주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도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주민투표 대상이라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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