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케이비(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이 금융지주의 주력사인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에게 모두 문책경고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금융감독원장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의 지난달 21일 경징계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알아서 물러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두 사람에 대한 이런 중징계 결정은 당연하다. 이들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안건을 두고 그동안 심한 내분을 빚어왔다. 볼썽사나운 다툼은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처분이 나온 뒤에도 그치지 않아 금융계 안팎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쏟아졌다. 그냥 방치하면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상표 가치를 훼손하는 등 폐해가 작지 않을 게 분명하다.
최 원장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을 중징계하는 이유로 주전산기 교체에 따른 위험성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고서도 감독 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국민은행의 건전한 운영에 해를 끼쳤다는 점을 들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이런 논리를 수긍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잘못은 이것만이 아니다. 금감원 검사를 받는 과정은 물론, 그 뒤로도 상대방에 대한 상식선을 넘는 흠집내기 공격 등으로 자신들이 이끄는 조직에 큰 상처를 줬다. 직원들의 자존심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활동에 긴요한 신인도에 손상을 주는 행동을 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비호를 받다 보니 그런다는 둥 뒷말은 또 좀 많았는가. 다른 선진국에서라면 금융기관의 경영을 맡을 수 없는 부적격자로 찍혀 벌써 퇴출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은 본인들이 자초한 업보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옳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마음이 있다 해도, 그것이 그동안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도리다. 그래야 조직도 이른 시일에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행장이 중징계 결정이 있고 나서 몇 시간 뒤 사임한 것은 이런 점을 의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최 원장도 이번 사태에서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성급하고 무리하게 징계 건을 처리하려고 하면서 쓸데없는 부작용을 빚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금감원의 검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중징계를 내릴 뜻을 밝혔다. 그런데 제재심의위원회가 경징계로 처벌 수위를 낮추면서 감독 당국자로서의 체면을 구기고 혼선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번 사태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