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이사회가 지난 5일 ‘친일·독재 미화’로 논란을 빚은 이인호 이사의 이사장 선출을 강행했다. 이사 임명에서부터 이사장 선출까지 마치 군사작전을 벌이듯 속전속결이었다.
8월27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이씨를 공석인 한국방송 이사로 추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하루 만에 안건 처리를 위한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이어 1일에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반대하는데도 쫓기듯 표결에 부쳐 이씨를 이사로 추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날 곧바로 이사로 임명했다. 이어 사흘 만에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만 모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새 이사장으로 호선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과 한국방송 노조, 언론단체·역사단체들의 항의는 묵살당했다.
방통위와 청와대, 한국방송 이사회가 이렇게 무리수를 써가며 일사천리로 새 이사장 선출을 강행한 것은 청와대의 방송 재장악 의지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한국방송은 세월호 참사 왜곡보도에 대한 국민적 비판으로 제작거부 운동이 일어나 길환영 사장이 해임되고 조대현 현 사장이 선출됐다. 조 사장 선출은 한국방송이 정권홍보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정상화될 수 있는 계기를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 처지에서 보면 한국방송이 정권의 손아귀에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길영 이사장을 밀어내고 이인호 이사장을 새로 들인 것은 한국방송을 다시 정권의 입맛에 맞게 주무르겠다는 뜻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 이사장의 선출은 최근 노골화하는 ‘친일·독재 옹호’ 뉴라이트 학자들의 언론·학계 장악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도 개탄스럽다. 지난해 이후 임명된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이 모두 뉴라이트 출신이다. 특히 지난 6월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의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임명은 뉴라이트의 방송 장악 사례라고 할 만하다.
그런 중에 이 이사장까지 선출돼 방송 제작 환경이 더욱 일그러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이 이사장은 편향적인 역사관 때문에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다. 문창극 강연이 보도됐을 때 그 내용을 옹호했고, 조부의 친일 행적을 부끄러움도 없이 변호했다. 이런 반역사적인 의식을 지닌 이사장이 제작에 개입한다면 한국방송은 ‘국민의 방송’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이사장이 만약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방송을 건드리고 청와대 하수인처럼 보도에 관여한다면 국민의 지탄과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친일 옹호 이인호, 공영방송 이사장 자격 없다 [오피니언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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