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셋값 움직임이 심상찮다.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전세가율)이 전국 평균 70%에 육박했다. 추석 연휴 뒤의 전세시장 여건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전세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거나 새로 셋집을 구하는 서민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케이비(KB)국민은행이 집계한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8월 현재 69.1%로, 1998년 이 은행이 통계를 낸 이래 두번째로 높다. 매매가격보다 전셋값이 더 큰 폭으로 오른 결과다. 8월의 전국 아파트 매매 시세는 1년 전에 견줘 1.6% 오른 데 비해 전셋값은 4.4%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의 9·1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뒤에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폭이 더 커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빠르게 전환하는데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겹쳐 전세물량 부족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전세 수급의 불균형 해소 대책으로 매매시장 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 9·1 부동산 대책도 재건축 규제 완화와 청약제도 개선 등으로 매매 수요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8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전세살이 세입자들에게 빚을 내 집을 사도록 하는 게 정부가 생각하는 전세난 해법이다.
하지만 이는 가계의 주택 구입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책상머리 처방이다. 가계소득 대비 지금의 주택가격 수준을 고려하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옮겨갈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빚을 내더라도 집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 가계도 수백만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매매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집값마저 들썩이게 되면 전세난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민 주거비 부담은 커지고 전세 난민만 양산할 위험이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서민의 주거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체 가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나 임대계약갱신청구권 등 야당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세입자 지원 대책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중장기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약속한 대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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