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1일부터 담뱃세를 2000원 올리기로 했다. 현재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담뱃값은 가장 낮은 데 반해 성인 남성 흡연율은 44%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담배 가격이 10% 오르면 담배 소비가 3~5% 줄어든다는 세계은행 조사결과도 있다. 흡연율을 낮출 수만 있다면 4500원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라도 올릴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담배의 특성을 고려하면 세금 인상에 앞서 처리해야 할 조건이 있다. 담배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소비하는 품목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우리나라 흡연율의 사회 계층별 불평등과 변화 추이’ 보고서(2007년)를 보면, 2005년 기준으로 소득수준 5분위(상위 20%)의 흡연율은 47.8%였으나 소득이 최하위인 1분위의 흡연율은 무려 64.6%다. 결국 담배에 붙는 세금의 대부분을 서민층이 부담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8조5000억원가량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데 이어 올해는 10조원의 세수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고 한다. 담뱃세를 2000원 올릴 경우 최소 2조8000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다. 세수 부족분의 3분의 1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 때문에 조세 저항이 극심한 직접세보다는 비교적 조세 저항은 적으면서 손쉽게 걷을 수 있는 간접세를 올려 세수를 확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조세는 공정하면서도 공평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세금을 올리는 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는 역진 현상을 불러올 뿐이다. 삶의 고달픔을 담배 한 모금에 실어 보내는 서민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다.
따라서 담뱃세를 올리려면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고소득자들에게 누진체계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앞서야 한다. 부자 감세도 철회돼야 한다. 그래야 담뱃세 인상이 국민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또 담뱃세 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은 금연사업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투입돼야 한다. 정부가 올해 담배에서 거두는 건강증진기금 2조원 가운데 절반가량은 건강증진과 관련없는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금연사업에 쓰는 돈은 1.2%인 243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우리나라도 담뱃세의 일정 비율을 금연 정책에 사용하도록 법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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