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운영된 지도 40여일이 흘렀다. 7·30 재보선 참패의 충격을 딛고 당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비대위에 부여된 임무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비대위의 점수는 완전히 낙제점 수준이다. 이름만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거창할 뿐 국민과의 공감도, 뼈를 깎는 혁신도 찾아볼 수 없이 당은 오히려 더 지리멸렬해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의 지지도가 10%대까지 추락한 것도 비대위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준다.
박영선 위원장은 12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투톱’ 공동 비대위원장 추진 방침을 밝혔다. 그렇지만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이 교수 영입에 대한 당내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면서 이 구상은 꺼내자마자 사실상 물거품이 될 운명에 처했다. 이 교수가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현 정권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래도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을 비대위원장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 정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돈 교수는 “(비대위원장 영입은) 자연스럽게 무산됐다”고 말했고, 안경환 교수도 비대위원장 직책이 자신의 역량에 맞지 않는다고 말해 고사할 뜻을 내비쳤다. 박 위원장이 당내 정서를 헤아리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비대위원장 인선이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꼬이게 한 것이다.
박 위원장의 치명적인 판단 착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유족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합의해주는 어이없는 실책을 연거푸 두 번이나 되풀이했다. 야당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대거 등을 돌리고 떠났다. ‘믿을 수 없는 야당’ ‘엉터리 야당’이라는 이미지는 더욱 강화됐다. 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박 위원장이 오히려 대량실점 원인제공자가 되고만 것이다.
이번 사태로 박 위원장은 리더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더 이상 당을 이끄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정치적 판단 능력, 당원과의 공감 능력 등 모든 면에서 기대 이하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당내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차피 박 위원장이 물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이지만, 문제는 비상대책위마저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새정치연합의 앞날은 더욱 깜깜해졌다는 점이다. 아무런 회생 가능성도 없이 끝 모를 혼돈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는 야당의 모습이 참으로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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