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3일 사실상 첫 인권보고서를 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움직임에서 새로운 양상이다. ‘조선인권연구협회’ 이름으로 발표된 이 보고서는 A4 용지 8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우리 정부의 노력이 더 중요하게 됐다.
북한은 보고서에서 ‘국제인권협약들에 의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최종보고서 발표 이후 국제적인 압박이 커지는 데 대한 대응이라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이뤄지는 인권 문제 제기에는 대화로 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의 큰 항목 역시 ‘북한의 인권보장제도’ ‘인민들의 인권향유 실태’ ‘인권의 국제적 보장과 관련한 우리 입장과 노력’ ‘북한의 인권보장 전망’ 등으로 돼 있는 등 국제적인 비판을 의식한 흔적이 뚜렷하다. 앞서 북한은 9일 유엔 본부에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서는 여전히 ‘미국과 서방 나라들이 국제인권기구까지 내세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떠드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며 국가전복을 노린 인권침해 행위’라고 하고 있다. 적어도 북한 정권에 적대적인 나라의 인권 간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금도 서방 진영 기준에 맞는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인권 문제를 부정할 수도 없고 솔직하게 인정하기도 어려운 북한 정권의 고민이 엿보인다.
북한이 인권대화를 강화한다면 우리 정부나 인권단체가 주요 상대가 되는 것이 마땅해 보이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실제로 북한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유럽연합(EU)과 인권대화를 했으며, 현재 유럽을 순방 중인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도 유럽연합 인권특별대표와 만났다. 북한이 보기에 미국·한국 등과는 달리 유럽연합은 체제 위협 세력이 아닌 셈이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인권 문제를 집중 제기한 여러 나라가 미국의 무력 공격 대상이 된 사례들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엔 총회는 2005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 결의안을 통과시켜왔다. 올해는 좀더 강한 결의안이 예정돼 있다. 더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다. 남북 사이에 인권대화가 시작돼 성과를 내려면 남북관계가 개선돼 신뢰가 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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