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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유가족 가슴에 대못 박은 박 대통령

등록 2014-09-16 18:23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며 실망감에 앞서 우선 착잡함이 밀려오는 것은 그의 놀랍도록 냉담하고 뻔뻔하고 잔인한 태도 때문이다. 대통령이 오랜만에 세월호에 대해 입을 열었다면 우선 자식 잃은 슬픔 속에 추석 명절을 보낸 유족한테 위로의 말 한마디쯤 건네고 시작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은 싸늘함과 살기등등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고 있음이 발언 하나하나에서 확연히 묻어나온다.

박 대통령의 왜곡된 현실인식은 “순수한 유가족의 뜻”이라는 언어 선택에서 더욱 극명히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등을 주자는 주장은 ‘순수하지 않은 유가족의 뜻’이라는 이야기다. 유가족을 ‘순수’와 ‘불순’으로 나누고,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분자들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것이 박 대통령의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박 대통령이 밝힌 진상조사위에 대한 수사권·기소권 부여 거부 이유가 법이론적으로 엉터리임을 누누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박 대통령은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유족들이 원하는 특검,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했던 약속을 뒤집는 이유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의 문제점이 대부분 드러났다”고 말한 것도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대목이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청해진해운 등의 잘못은 어느 정도 드러났는지 모르지만 수많은 아까운 목숨을 눈앞에서 수장시킨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게다가 그 핵심에는 이른바 ‘7시간 미스터리’를 비롯한 청와대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도 포함돼 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유족의 요구를 거부한 것도 결국은 직접 ‘자기방어’에 나선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마저 버리고 ‘2차 협상안에서 더 이상 양보 불가’라는 ‘지침’까지 공개적으로 내렸다.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한 의혹 제기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연애’ 등의 발언에 박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느끼는 것은 물론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적 대참사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밝히는 문제다. 그런 것은 국민이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태도야말로 ‘국민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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