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근 주한미군 2사단 예하 210화력여단의 한강 이북 잔류를 요청했다고 한다. 오래전에 확정돼 시행 중인 이전계획을 뒤흔드는 행태다. 정부는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를 경기도 평택으로 옮기는 기존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바란다.
210화력여단은 병력이 2천명이 넘는다. 이들이 경기도 동두천에 잔류한다면 주한미군 이전계획 전체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이 계획은 두 나라 정부의 합의는 물론이고 국회 비준까지 거쳐 2016년까지 끝내도록 돼 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국방 주권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당 지역 주민과 지자체 역시 재산권 행사 제약 등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이 이제 와서 잔류를 요청한 이유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에 낫다는데, 예전 상황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군이 한강 이북에 있어야 유사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인계철선론은 미국 스스로 부인한 바 있다. 미국이 이전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쓴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이런 요구가 우리나라의 자주국방 역량을 침식하는 여러 움직임과 함께 진행되는 점이다. 미국은 평택으로 옮겨가기로 돼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도 서울 용산기지 안에 남겨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역시 앞서 합의한 계획을 무시하는 행태다. 나아가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도 밀어붙이려 한다. 사드가 들어오면 우리나라는 미-중 군사대결의 최전선이 된다.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쪽으로 족쇄가 생기는 셈이다. 대북 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주한미군의 성격도 달라진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연이어 내놓는 데는 우리 정부의 의존적인 행태가 작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안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재연기다. 정부는 주권국가라면 당연히 빨리 가져와야 할 전작권을 미국이 계속 맡아달라고 사정하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이 사안을 ‘꽃놀이패’인 양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최근 두 나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유사시 운용되는 한미연합사단 창설에 합의한 바 있다. 이것 역시 미국의 발언권을 키우고 있다.
내년도 국방예산은 37조6천억원에 이른다. 북한의 국내총생산(약 300억달러)보다 큰 규모다. 그럼에도 무작정 미국에 기대겠다고 해서는 자주국방 역량 위축은 말할 것도 없고 사안마다 미국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주권국가가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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