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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비리 기업인’ 풀어주려고 터 닦기 나섰나

등록 2014-09-25 18:44수정 2014-09-25 22:32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24일 수감중인 비리 기업인들을 가석방으로 풀어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 여론이 형성된다면 기회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짐짓 떠보는 식이지만, “부당이득을 사회에 환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살리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등 과거 비리 기업인들을 사면할 때 썼던 핑계를 그대로 댔으니 금세라도 풀어줄 태세다.

정부 기조가 정반대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법무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회지도층과 고위공직자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가석방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가석방심사위원회를 통과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가석방도 불허됐다. 황 장관도 취임 때와 지난해 4월 언론 인터뷰에서 비리 기업인에 대한 ‘철저한 법집행’과 ‘엄정한 처리’를 강조했다. 그런 ‘무관용 원칙’이 지금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가석방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태도로 표변했다. 전형적인 ‘말바꾸기’다.

그 핑계가 ‘경제 살리기’라는 점은 더욱 걱정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는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재벌 총수가 수천억원대의 배임·횡령, 조세포탈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휠체어에 탄 채 가석방되는 모습이 거듭되면서 ‘유전무죄’라는 국민의 비난과 불신이 켜켜이 쌓인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기업인 비리가 기업과 국가경제를 좀먹고 종국에는 체제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회 전반의 공감도 커졌다. 그 이후 비리 기업인을 법대로 처벌하기 시작한 게 고작 1~2년이다. 원칙이 자리를 잡아 잘못된 관행을 뿌리부터 교정하기엔 아직 턱없이 모자라는데, ‘당장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핑계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꼴이다. 그 앞장을 황 장관이 섰고, 이어 정부의 실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5일 “투자부진 때문에 경제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황 장관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맞장구쳤다. 투자 따위의 대가로 가석방 등도 고려하겠다는 노골적인 흥정으로 비친다. 과거의 비정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니 흉할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공교롭게도 황 장관의 발언이 전해진 날, 검찰은 다른 재벌 총수의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재벌 앞에서 ‘당근’과 ‘채찍’을 함께 보여줬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게 됐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기엔 비루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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