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야당에 요청했다. ‘수사·기소권에 준하는 방안으로서 유가족과 국민이 양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최대 쟁점인 수사·기소권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로 돌아섬에 따라 여야가 절충점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은 유가족의 태도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줄 수 없는 것으로 진작에 정리됐기 때문에 새로운 양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상당히 지루하고 긴 과정이 남아 있다”고 했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전략일 수도 있지만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묶인 여당이 재량권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새누리당은 특별법 협상에선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서 국회 일정을 밀어붙이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26일 국회 운영위를 단독으로 진행한 데 이어 본회의까지 단독으로 열어 법안을 처리하려 했다. 다행히 정의화 국회의장이 30일 본회의를 속개하겠다며 산회해 여당의 법안 강행처리 시도는 무산됐다. 주말 이틀을 빼면 본회의 법안을 26일 처리하든 30일 처리하든 큰 차이가 없다. 26일을 넘기면 엄청난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여당이 어렵게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면서까지 국회를 무리하게 운영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 협상은 뒷전이고 야당을 압박하는 데 진력하는 새누리당 태도를 보면 과연 특별법을 풀어내고 국회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혹시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지침을 준수하느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면 청와대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이런저런 오해를 사기 쉽다. 국회 일정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쑥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다. 집권당의 국회활동을 책임진 사람답게 무겁고 책임 있게 움직이길 바란다.
국회가 유가족들의 양보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면 세월호 특별법 처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여야는 조속히 특별법 협상을 마무리짓고 30일부터 국회를 정상 가동하기 바란다. 이제 공은 새누리당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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