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보면, 복지예산 비중(30.7%)이 처음으로 전체의 30%를 넘는다. 복지예산 증가율이 8.5%로 전체 예산 증가율(5.7%)을 크게 앞선 데 따른 결과다. ‘30% 돌파’는 복지정책 역사에서 평가할 만한 의미있는 수치다. 그럼에도 복지예산의 세부항목에서 문제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저출산 해소와 일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정부 지원사업이 축소되는 쪽으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먼저 가정양육수당 사업예산이 올해보다 1135억원이나 줄어든다. 이 수당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0~5살 아이가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10만~2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예산 집행 실적과 출산율 감소를 고려해 삭감했다고 하지만 규모가 적정한지 의문이다. 정부가 며칠 전 ‘정부 3.0 발전계획’을 통해 양육수당 신청서를 미리 만들어 보내는 등 ‘선제적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힌 점에 비춰보면 더 그렇다. 예산이 줄면 사업은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저체중 출생아 치료와 관리를 위한 ‘신생아 집중치료실 지원’ 예산이 20억원, 영유아의 선천성 장애 여부를 출생 뒤 조기 검진하는 ‘영유아 사전·예방적 건강관리’ 예산이 17억원 삭감됐다. 암환자 지원(50억원), 희귀 난치성 질환 의료비 지원(29억원), 노인 의치·틀니 지원(67억원) 예산 등도 줄어들게 돼 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예산은 한정된 반면, 써야 할 곳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계층·집단에 꼭 필요한 사업이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불가피한 경우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출산·취약계층 지원 예산의 삭감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저출산 해소는 중요한 국가 과제다. 이런 예산을 줄인 채 어떻게 저출산 상태에서 벗어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취약계층 지원 예산 삭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소외감과 박탈감을 키워서는 안 된다.
그런 만큼 저출산·취약계층 예산을 늘려야 한다. 복지예산 증대에 가려진 이런 그늘을 줄일 수 있게 예산을 재조정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 대비 9.8%인 복지예산 비중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21.9%, 2012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세부담률을 보면 비중을 높일 여력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제대로 된 복지가 없으면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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