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 미사일방어(사드) 체계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민을 속이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확실하게 배치 거부 뜻을 밝히기 바란다.
로버트 워크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30일(현지시각)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8월 방한 때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가 사드와 완벽하게 상호운용성을 갖추길 원한다’고 한 것보다 한 걸음 더 나간 발언이다. 미국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꾀하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있었다. 올해 상반기부터는 우리 정부와 협의 중이라는 미국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미국의 공식 요청도 협의도 없었다’고 발뺌한다. 주한미군과 미국 정부 사이에 오가는 얘기일 뿐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주권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워크 부장관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이나 러시아와 계속해서 그들의 우려를 덜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고 한 것도 간단하게 봐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러시아가 양해하면 우리나라 의사와 관계없이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발언을 쉽게 하는 것 자체가 오만함의 표현이다. 물론 사드 배치를 자국에 대한 전략적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손발을 맞추리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제정치의 속성으로 볼 때 한반도 안보가 세 강대국의 거래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배경에는 우리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재연기하는 대가로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려 한다는 ‘뒷거래설’도 끈질기게 나돈다. 사실이라면 국방주권을 유보하면서 안보 환경까지 악화시키는 최악의 선택이다. 사드가 미국 미사일방어 체제의 핵심 장비이며 중국·러시아가 주된 상대임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사드는 중국 주요 지역을 탐지할 수 있는 엑스(X)밴드 레이더와 연동하며, 미국은 이전에도 이 레이더를 우리나라에 설치하려고 애썼다는 게 정설이다.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는 불확실한 대북 미사일 억제력 강화를 명약관화한 안보 환경 악화와 맞바꾸는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정부는 즉각 사드 배치 거부 뜻을 밝혀 논란을 마무리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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