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놓고 시·도교육감과 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7일 교육 재정난을 들어 내년부터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지난달 3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복지 디폴트(지급 불능)’ 선언 예고에 이은 또다른 ‘복지 충돌’인 셈이다.
갈등의 중심에는 3~5살 어린이의 유치원·어린이집 보육비를 지원하는 누리과정이 있다. 내년도 누리과정에 드는 예산은 모두 3조9000억원쯤 된다. 정부 정책이 바뀌어 내년부터는 교육청이 이를 전액 부담하도록 돼 있다. 2011년 정부가 시·도교육청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누리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떠넘겨 버린 것이다. 게다가 교육재정의 복지 부문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데 반해 교육재정교부금은 갈수록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침체로 교육재정의 재원이 되는 지방세 부문에 대한 징수 상황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 쓸 곳은 많아지는데, 들어오는 돈은 줄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교육감협의회의 주장은 똑같은 어린이 교육 문제를 두고 유치원은 교육부(교육청), 어린이집은 복지부(지자체)로 나뉘어 영역 다툼을 벌이던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국민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든 돈만 나오면 된다. 하지만 ‘국가 보육 책임’을 내걸며 무상보육을 공약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선거 때 “보육비 부담을 덜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걸 국민은 잊지 않고 있다. 시·도교육감의 공약이 아니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며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원칙을 직접 공언하기까지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정부는 “어린이집 보육비는 시·도교육청이 짜야 한다”며 “지방채 발행을 지원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빚을 내서 일단 메우라는 뜻인데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물론 정부도 어려운 처지라는 걸 안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다. 박 대통령이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담뱃값 인상처럼 슬그머니 서민들 호주머니를 터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지와 증세 등 예산 체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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