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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영어에 치인 우리 말글 돌아봐야 할 때다

등록 2014-10-08 18:26

9일은 1446년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68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1991년 법정 기념일에서 빠졌다가 다시 법정 기념일로 돌아와 두 번째 맞는 한글날이기도 하다. 한글이 걸어온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한글 창제 이후 조선시대 내내 지배층의 멸시로 한글은 나라글자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 말기에는 황민화정책으로 우리 말과 글을 아예 가르칠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얼과 혼을 담는 그릇을 영영 잃어버릴 뻔했다. 그러나 그런 위난을 이겨내고 한글은 8000만 겨레의 정신문화의 바탕으로 자리잡았다.

때마침 한글이 태어난 날에 맞춰 국립한글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우리 말과 글을 쓰는 언중과 더불어 축하할 일이다. 서울 용산구에 들어선 한글박물관은 훈민정음 창제 전후부터 현재까지 한글의 역사를 알려주는 1만여점의 자료를 품고 있다. 세종 임금이 뿌린 한글이라는 씨앗이 오늘의 한글문화로 꽃피기까지 과정을 그대로 되밟을 수 있다.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어린이들,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하는 시민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가치를 체험할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글의 생일을 맞았다고 마냥 축하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세종 임금이 한글을 만든 뜻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 말글이 처한 상황은 참담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방송언어와 대중음악에서부터 공문서에 이르기까지 영어가 점령군처럼 들어앉은 지 오래다. 특히 대학에서 우리 말과 글에 보이는 홀대는 언어사대주의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영어 강의를 의무화해 교수와 학생들을 모두 괴로움 속에 몰아넣는 것은 문화적 자학이다. 영어로 쓴 논문이면 무조건 우대하는 것도 어이없다. 이런 영어물신숭배가 영어 강의와 영어 논문에 높은 점수를 주는 언론사들의 대학평가 때문에 심해지고 있다.

외국어 강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외국어로 논문을 써야 할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무작정 일반화해 영어로 강의하고 논문 써야만 우수해지고 국제화한다는 발상은 어리석은 광기다. 인문학자들은 한 나라의 인문정신은 남의 언어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말과 글로 사유하고 창조하는 노력 없이 우리 문화가 높아질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영어숭배가 계속되면 한글이, 나아가 한국어 자체가 영원히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글날이 우리 말글살이를 깊이 성찰해보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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