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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스펙 입시’가 낳은 ‘입학사정관제 사기극’

등록 2014-10-09 19:00

온갖 스펙을 조작해 2012년과 2013년 연이어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이 경찰에 적발됐다. 어머니와 교사가 공모해 작품 대필, 경시대회 대리 참가, 봉사활동 허위 작성, 체험활동 허위 보고서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거액의 돈도 오갔다. ‘스펙 입시’를 선도하는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이 제도는 기본 틀을 유지한 채 2015학년부터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사기극을 연출한 사람은 손아무개(20)씨의 어머니 이아무개(49)씨와 2개 고교 교사 3명이다. 이들이 조작한 스펙으로 손씨는 좋은 품성에다 다채로운 역량을 갖춘 수험생으로 재탄생했다. 서울 ㅅ대와 ㄱ대가 이를 전혀 걸러내지 못한 것을 보면 입학사정관제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는지 알 수 있다. 사기극에 관여한 한 교사가 다른 학부모에게서 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다면 이 사안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이씨의 태도다. 그는 경찰에서 ‘강남 지역에서는 다 이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갖고 이러느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서울 양천구에 있는 ㄱ고교에 다녔다.

새로 도입되는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도 나쁘지 않다. 성적 위주의 입시 풍토에서 벗어나 잠재력 있는 학생을 뽑자는 것이니, 잘만 운용되면 학생과 학부모, 학교와 사회에 모두 좋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갈수록 스펙 경쟁의 양상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생겨났고 부유층이 아니면 따라가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대학 쪽이 집안 좋은 수험생을 입학시키려고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번 사기극에는 이런 모순이 응축돼 있다.

도입한 지 6년밖에 안 되는 제도를 두고 존폐를 얘기하는 것은 섣부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문제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나의 방향은 스펙 입시 지향에서 벗어나 잠재력이 있는 소외계층 자녀를 발굴하는 데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기회 균등 보장이라는 사회정의에도 부합한다. 여건이 좋은 학생은 어떤 평가 방법을 쓰든 제 길을 찾기가 쉽다.

학생들은 지금 내신, 수능, 스펙이라는 3중고에 시달린다. 스펙 경쟁은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내려가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부모의 경제력에 기댄 스펙 경쟁을 지양하고 내실 있는 입시 제도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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