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는 올해 보험업계의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다. 보험 가입자가 자살을 했을 때도 일반 사망보험금의 2배가 넘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생보사들이 약관에 명시해 놓고서 이를 지키지 않아 빚어진 일이다. 지금은 이런 약관이 사라졌지만 해당 약관이 통용되던 당시 가입한 계약자들로서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달콤한 유인책을 내놓았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나몰라라 하는 식 아닌가.
그런 와중에 생보사들이 금융감독원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짬짜미(담합)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잘 알다시피 짬짜미는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무거운 범죄행위다. 그런 만큼 공정거래위원회가 보험사들의 짬짜미 의혹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문제로 논란이 일자, 생보사 10여곳에 민원이 제기된 39건의 계약을 대상으로 당사자와 합의해서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처리 결과를 지난달 30일까지 보고하도록 했다. 그런데 생보사들이 이 시한에 맞춰 지급 거부와 소송 제기 방침을 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짬짜미를 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에 보고하기 일주일 전쯤 담당 부서장들이 모여 이런 쪽으로 공동 대응한다는 입장을 정했으며, 그 뒤로도 전화통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보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금감원 권고를 무시한 채 계속 보험금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동 결정한 것이어서 짬짜미로 봐도 그르지 않다. 공정위 관계자들도 비슷한 의견이라고 한다. 보험 가입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는 결정을 함께 내렸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생보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담당자들이 가격(보험금) 결정과 관련해 공동 대응한 것이 아니어서 짬짜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보사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공정위가 곧바로 조사에 나서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저해함으로써 가입자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으로 드러나면 엄벌하는 게 마땅하다.
금감원도 가입자들이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금감원이 이 문제에 소극적이란 비판이 많다. 아이엔지(ING)생명만 제재를 하고 다른 업체에는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지적이다. 소송이 진행되면 미지급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이와 별개로 해법을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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