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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오죽했으면 ‘감청영장 불응’까지 말했겠는가

등록 2014-10-14 18:37수정 2014-10-14 22:11

다음카카오가 13일 카카오톡 이용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인한 이용자들의 불신이 ‘사이버 망명’ 사태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회사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되자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검열 논란에 안이하게 대응했던 다음카카오가 늦게라도 이번 사태의 의미와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다행이다.

다음카카오의 대응을 두고 “법 집행 거부”라는 비판도 있는 모양이다. 실상과 다른 주장이다. 대법원 판례는 감청을 과거의 대화 내용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대화·통신 내용을 몰래 듣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카톡은 전화와 달리 현재 기술로는 실시간 감청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감청영장이 버젓이 집행됐던 것은, 회사 쪽이 감청영장을 거부하는 대신 압수수색영장을 받은 셈치고 서버에 보관된 3~5일씩의 대화 내용을 복사해 수사기관에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검찰·법원·회사 모두 ‘관행에 따라’ 감청영장을 청구하고, 발부하고, 응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카카오의 감청영장 불응은 법에 따른 정당한 입장 전달일 뿐, 공무집행 방해나 거부가 될 수 없다.

따지자면 사태의 근본 책임은 무분별하게 사이버 검열을 시도한 검찰과 경찰에 있다. 수사기관들은 그동안 범죄 수사에 필요한 범위를 훨씬 넘는 광범위한 개인정보와 대화·통신 내용을 확보하려 들었다. 개인정보 보호나 인권 침해 위험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 포털이나 통신사들도 10년 넘게 고분고분 알아서 정보 제공에 협조해왔다. 이름·주소·전화번호 등의 통신자료는 영장도 없이, 법원 판결도 무시한 채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지난해에는 그 건수가 5년 전의 두 배인 1000여만건이었다. 그렇게 쉽게 협조를 받아온 탓에 이번에도 검찰이 메신저 서비스에 대한 실시간 검열을 쉽게 꿈꿨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런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사이버상의 개인정보는 침해의 범위와 피해 규모가 오프라인의 경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수사를 핑계로 검열을 하려 든다면 그 피해는 더 커진다. 수사기관부터 ‘투망식 사이버 수사’를 포기해야 한다. 다수의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는 압수수색영장 따위를 함부로 들이대는 대신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하며 수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법원도 대상과 방법을 구체화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마구 뒤져볼 수 있게 영장을 발부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금융정보의 경우, 계좌추적 기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연결계좌까지 무한정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과거의 포괄적 영장 대신 압수수색의 대상과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 일건주의 영장으로 이미 바뀐 터다. 아울러 감청을 무제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등 허술한 법제도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다음카카오 등 포털과 통신사들도 이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를 보호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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