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셋값이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다. 국민은행 등이 발표한 주택가격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8월 이후 서울과 수도권에서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전세가율)의 비율이 70%를 넘어선 지역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입자들의 전세자금 대출도 급증하는 추세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서민들이 극심한 주거불안에다 빚 수렁에 빠질 위험에 놓인 것이다.
주택의 전세가율이 70%를 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상적인 주택시장에선 전세가율의 상승이 집값 상승의 선행지표다.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에 조금만 더 돈을 보태면 집을 살 수 있고, 그 결과로 매맷값이 전반적으로 올라 전세가율은 저절로 다시 떨어지는 게 정상적인 흐름이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은 기형적이다. 매매가격과는 달리 전셋값만 2년 넘게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9월까지 전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2.8% 상승에 그쳤으나 전셋값은 15.9%나 올랐다. 전셋값 상승폭이 매맷값보다 6배 가까이 가파른 셈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계의 구매력에 견줘 이미 집값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에 있는데다 인구증가율 둔화와 고령화 등으로 미래 집값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둘째,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임대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물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영향도 있다.
어쨌든 전셋값의 가파른 상승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이중으로 고통을 준다. 소득이 정체된 가운데 전셋값이 치솟으면 세입자는 빚을 늘리는 것이 유일한 대응 방법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박원석 의원(정의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은행권의 전세자금 신규 대출이 월평균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전세 거주 가계의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빚을 내서 오른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는 이른바 ‘렌트푸어’가 늘어나면 가계와 금융권의 연쇄 부실 위험도 커진다.
정부 주택정책의 우선순위는 경기부양이 아니라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에 둬야 한다. 가파른 전셋값 상승세를 진정시키려면 공적 기금을 활용한 매입임대주택의 공급 확대 등 정부가 특별 수급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임대차계약 등록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전월세 가격 상한제 등 제도적인 세입자 보호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정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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