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론 발언에 뒤이어 공무원연금 처리 시기를 둘러싼 당청 이견이 표출되더니, 21일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개헌 관련) 언급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면으로 김 대표를 면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치권에서 이견과 갈등이 표출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최근의 당청 갈등 양상은 우리 정치문화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에 대해선 서로 다른 평가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당 대표이기 이전에 국회의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발언 하루 만에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꼬리를 내린 김 대표 처신도 우습지만, 닷새나 지나서 청와대가 김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건 적절치 못하다. 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갑자기 나섰는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마도 이탈리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김 대표 발언에 역정을 냈을 것이고, 이런 기류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뒤늦은 ‘김무성 때리기’로 표출됐으리라.
대통령 뜻을 헤아린 청와대 인사가 ‘고위 관계자’란 익명의 그늘에 숨어 여든 야든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때리는 관행은 이 정부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심기에 따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인형처럼 춤추는 듯한 모습은 이 정부 들어 훨씬 심하다. 이러니 정치권이든 재계든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대통령은 점점 ‘제왕’처럼 떠받들어지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청와대 비판이 정정당당해지려면 청와대 인사는 떳떳하게 실명을 밝히고 비판하고 그에 대한 여론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무원연금 문제에서 “빨리 처리하라”고 김무성 대표를 압박하는 청와대 태도도 온당하지 않다. 핵심 국정과제를 신속하게 추진하려는 청와대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이라 충분한 토론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김 대표의 주장은 틀리지 않다. 대통령이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국회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든 야든 의원들을 설득해서 뜻을 관철하는 게 바로 ‘정치’다.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여당 대표는 윽박지르듯이 내몰고, 야당은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으면서 주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건 또다른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다. 그러니 개헌론이 나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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