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유치에 84.9%가 반대한 9일 강원도 삼척 시민들의 주민투표를 두고 경찰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민투표와 상관없이 원전 건설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전에 반대하는 주민 뜻이 엄연히 드러났는데도 이를 수용하기는커녕 경찰을 앞세워 입을 틀어막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이러니 ‘불통 정부’란 말을 듣는 것이다.
지금 경찰이 벌이는 수사는 ‘국가권력의 풀뿌리 민주주의 탄압’이라는 비판을 받기 딱 알맞다. 삼척 시민들은 투표에 적극 참여했을 뿐 아니라 주민투표의 모든 과정을 직접 관리했다. 원전 건설 문제가 현행법으론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선관위가 업무위탁을 거부한 탓이다. 700여명의 주민이 자원봉사에 나섰고, 1억원 정도의 투표관리 비용도 주민들이 대부분 부담했다고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상찬을 받기에 충분하다.
경찰이 이를 범죄시하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경찰은 시장과 공무원들이 이장·통장들에게 투표인명부 작성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 직권남용인지 조사한다지만, 주민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원전 건설에 대한 시민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소임이다. 행정의 가교 구실을 하는 이장·통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잘못일 수도 없다. 후원금 모금에 대한 조사도 먼지털기식 수사로 비친다. 이런 식으로 주민들을 굴복시켜 원전 건설을 강행하려는 것이라면 앞으로 더 큰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원전 건설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받아들이느냐는 ‘주민 수용성’이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과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도 여러 차례 이를 강조한 터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을 떠나 시민 의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를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내팽개친다면 주민 뜻은 아랑곳없이 강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된다. 정부는 96.9%가 동의했다는 2011년 주민서명부를 내세워 이미 삼척 시민의 수용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보기 흉한 억지일 뿐이다. 당시 서명부에 대해선 중복이나 대리 서명 따위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조작이 아니라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원전 반대를 대표 공약으로 내건 무소속 후보가 62.4%의 득표율로 시장에 당선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원전 반대가 압도적인 이번 주민투표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주민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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