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말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가 끝내 무산됐다. 24일 새벽(한국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두 나라는 이런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환수 시기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상의 전작권 환수 포기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최고 주권 사항인 작전권 문제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문제에서 얼마나 국민 의견을 수렴해서 기존 결정을 뒤엎는 협상을 추진한 것인지 절차적 정당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작권 환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두 나라가 합의한 것이긴 하지만 노태우 정권 때부터 군사주권 회복 차원에서 이념을 떠나 추진해온 사안이다. 박 대통령 역시 2012년 대선 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차질없이 추진해 한국군 주도의 새로운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몰래 미국에 작전권 환수 시기를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협상을 진행해왔다.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린 이유에 대해선 한마디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이번에 한-미 안보협의회의에서 전작권 환수 백지화를 공식화해 버린 건 국민을 속이고 무시하는 처사다.
현 정부의 국방정책 담당자와 강경보수 인사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한국군의 준비 부족을 환수 백지화의 근거로 든다. 하지만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지난해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작전권 전환 시점은 적절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미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있는 인사들의 대체로 일치된 의견이다. 남북의 경제력 차이뿐 아니라 남한의 국방예산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할 준비가 안 됐다”고 한다면, 도대체 우리 군의 자주적인 운용은 언제 가능한 건지, 현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지만, 전작권을 돌려받지 말자는 주장의 이면엔 결국 ‘미국에 의존해야만 안심이 된다’는 뿌리 깊은 대미 의존 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전작권 문제를 단순히 군사적 개념이 아닌 자주권의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워싱턴 안보협의회의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작권 환수를 백지화한 대가로 우리는 미국에 더 많은 것을 내주는 게 불가피할 것 같다. 앞으로 우리 군이 전작권을 돌려받을 수준이 되려면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핵심군사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미국의 군사무기를 훨씬 많이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작권 사슬에 매여 막대한 액수의 불필요한 방위비용까지 국민이 연년세세 부담해야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현 정권은 이런 문제들을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하고 역사적 평가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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