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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종미’라고밖에 볼 수 없는 전작권 포기

등록 2014-10-25 00:54

한·미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 연기한 것은 국가주권 포기와 진배없는 중대 사안이다. 그러나 이 사안의 최고 책임자인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내놓은 답변은 “정리된 입장을 말씀드릴 게 없다”가 전부였다. 나라의 주권이 걸린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겠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환수를 차질없이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결국 이 약속도 다른 대선 공약들처럼 무참히 깨버렸다. 전작권 환수 연기는 공약 파기 여부를 떠나 우리의 국익과 주권의 근본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직접 사태를 설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이 사안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오만이고 무책임이다.

전작전 환수 연기에 대해 국방부가 내놓은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우리의 전작권 전환 의지는 확실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애초 2015년으로 못박은 전환 시기를 구체적인 시한도 정하지 않은 채 미루어 두고는 ‘의지가 확실하다’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전작권을 받지 않겠다는 군사주권 포기 의지만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두 나라 합의에서 제시된 전작권 전환의 ‘조건’도 문제다. 한 장관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못박지 않고 ‘조건’으로 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안보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작권을 받을 수 없는 이유로 안보환경을 내세우는 것은 억지다. 이명박 정부 때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으로 확정한 것은 핵·미사일 위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작권을 환수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합의의 바탕에 깔린 것은 북한의 위협을 군사적 대응으로 억제하겠다는 사고다. 그런 사고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정착의 기회를 죽이고 군비경쟁만 키울 것이 뻔하다.

이번 합의 내용에서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용산과 동두천 미군기지 잔류 문제다. 용산의 한미연합사와 동두천 210여단의 평택 이전은 전작권 전환과는 직접 관련 없이 별도로 합의돼 국회 비준동의까지 마친 사안이다. 그런데도 공론화 과정도 없이 합의를 번복했다. 미국에 애걸하듯 전작권 전환 연기를 얻어내려다 보니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올 일을 서둘러 결정하고 말았다. 미국으로서는 용산과 동두천의 기지를 두고 평택의 미군기지 하나를 거저 얻은 셈이다. 우리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기지를 만들어주느라 막대한 비용을 퍼부은 꼴이 됐다. 주권국가라고 할 수 없는 우스운 짓이다.

주민들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동두천은 미군이 떠날 것으로 알고 세워놓은 도시계획이 무용지물이 되게 생겼다. 또 용산 기지의 경우 한복판에 한미연합사가 남게 됨으로써 공원 조성 계획을 대폭 변경하는 게 불가피하다. 기지 이전 문제는 애초 국회의 비준을 받은 사안인 만큼 그 합의를 변경한 것도 다시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마땅하다. 국회는 이 문제를 철저히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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