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무총리에게 맡기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시정연설의 상징적인 장면은 연설 도중 28차례 박수가 터져 나온 점이나 연설 뒤 여야 지도부와 회동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과 만나길 간절히 원하며 국회 앞에서 기다리던 세월호 유족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박 대통령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가 말하는 국가 운영의 기조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지금이 도약이냐 정체냐의 갈림길에서 우리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우리 모두 하나 되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다하자”고 역설했다. 지금이 ‘위기 상황’이며,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한다는 대통령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위기만 말할 뿐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는 시정연설에서 세월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도 “오다가 혹시 (세월호 유족들을) 못 봤나. 대통령이 자주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달라”는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국회를 찾은 목적은 ‘경제 살리기’니까 그 이외의 사안들은 ‘내 관심 밖이다’라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 대목이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보듬지 않으면서 ‘국민 통합’을 외치는 게 얼마나 공허한지는 지난 권위주의 정부 시절 숱하게 보았다. 세월호 유족을 냉정하게 외면하는 박 대통령 모습에선 국민을 하나로 모으려는 통합과 열린 소통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없다. 설령 세월호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부담스런 정치 사안이 되었다고 해도, 유족들을 그렇게 지나치는 건 국민을 이끌고 위기를 넘어서야 할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꼭 세월호 문제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전시작전권 문제나 남북관계와 같은 주요 현안을 얘기하지 않았다. 특히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 연기는 대선 공약을 뒤집은 것으로,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문제들에선 언급 없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연내에 처리해 달라고만 국회에 주문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개혁만큼이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이다. 국회 연설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엔 입을 다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일방적인 방식으로 ‘국가혁신’과 ‘경제 재도약’을 달성할 수 있을까, 청와대 스스로 자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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