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지닌 기술을 믿고 자금을 지원해주는 기술금융(기술신용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기술금융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정책이다. 시작한 뒤 몇 달 되지도 않은 기간에 대출액이 급증해 정부로서는 큰 성과를 내고 있다며 자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품 등의 부실이 끼어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은행연합회 자료를 보면,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실적은 7월말 486건 1922억원에서 9월말 3187건 1조8334억원으로 높아졌다. 지난달에는 2조원을 훌쩍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은행간 경쟁을 부추기는 등 기술금융을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는 박 대통령이 7월 금융기관의 ‘보신주의’를 질타하자 곧바로 기술금융 활성화로 화답하고 나섰다.
기술금융 확대는 일단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괜찮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금이 없어 제품화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은행이 이들 기업에 기술을 평가해 신용대출을 해준다면 기업들로서는 자금 부담을 덜고 제품화에 나설 수 있다. 성공한 기술기업, 특히 벤처기업들 가운데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경우가 적지 않다. 은행들로서도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기술금융 활성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3개월 새 2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을 좋게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한 은행의 대출 기업 가운데에는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 39%나 된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기존 거래기업에 추가로 대출해준 경우가 상당하다. 몇 달 새 해당 기업들의 기술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여길 만한 요인이 없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은행들의 기술 평가 능력이 뚜렷하게 신장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은행들이 금융위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늘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 만큼 기술금융 전반에 걸쳐 정밀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은행별로 기술을 제대로 평가한 뒤 걸맞은 규모의 대출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전업체 모뉴엘의 대형 사기대출 사건 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정부에서는 모뉴엘과 기술금융은 무관하다고 하겠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혹시라도 외환위기 뒤의 벤처금융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벤처라는 이름만 내걸면 금융지원을 해줘 적지 않은 국고가 축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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