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0월 말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신청한 변호사 7명 가운데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 이아무개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진술거부권 행사를 종용했다는 게 주된 ‘혐의’였다. 검찰은 배경 설명을 하면서 ‘일심회’ ‘왕재산’ 등 과거 간첩 사건에서도 장 변호사를 비롯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일심회’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장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권유하는 그를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조사실에서 끌어낸 것은 변론 활동 방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법원은 1·2·3심에서 한결같이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행사를 조언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결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형사소송법은 검사와 수사관도 피의자에게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않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유독 검찰만이 수사 방해라고 우기고 있는 셈이다.
법원 판결이 말해주듯, 조사실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는 등 수모를 당한 장 변호사야말로 피해자다. 그를 상습적인 수사 방해꾼처럼 몰아간 검찰의 처사는 적반하장의 극치다. 더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시점은 검찰의 징계 신청보다 며칠 앞선다. 검찰이 판결 내용도 몰랐던 것인지 알고도 무시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간첩 사건 재판에 조작 증거를 들이밀었다가 나라 안팎에서 망신을 산 지 얼마나 지났다고 ‘변호인 때문에 수사를 못하겠다’는 철없는 푸념이나 늘어놓는 검찰이 딱하기만 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증거 조작이 드러난 건 장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들 덕분이었다. 변론권을 충분히 보장하면서 유죄 입증을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변호인의 조력을 껄끄럽게 여기는 태도는 과학적 수사보다 강압에 의존하는 낡은 수사 관행에 대한 미련 때문은 아닌지 검찰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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