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 대한 나라의 임무는 이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잘 가르치고 잘 먹이는’ 일이다. ‘보육’과 ‘급식’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할 성질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엊그제 “무상보육은 대통령 공약이고 무상급식은 대선 공약이 아니다”라며 “누리과정은 무상급식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의 법적 의무사항”이라고 말했다. 무상보육을 위해 지방교육청이 무상급식용 예산을 무상보육으로 돌리라고 윽박질하고 나선 것이다.
안 수석의 발언은 바꾸어 말하면 ‘아이들이 무상으로 먹는 점심은 불법’이므로 ‘영·유아 동생들의 보육을 위해 형·언니들이 점심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발표가 있고 나서 “무상급식은 법적 근거가 없는 재량사업”이라고 노골적으로 지방교육청에 대한 압력을 강화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청와대와 여당이라면 어떻게 하면 재원을 최대한 염출해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먹일까를 고민해야 할 때에 고작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편가르기나 하고 나선 것이다. 그 사고방식의 황당함에 실망과 분노를 넘어 아득한 절망감이 몰려온다.
무상급식은 이미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을 거치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다. 또 현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3년째 무상급식을 해오고 있다. 대선에서 굳이 공약을 내걸 필요도 없었던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인제 와서 “무상보육 대선공약 나가시니 무상급식은 길을 비키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사실 청와대와 여당이 지방교육청을 압박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 1항은 이미 대선이 있던 2012년에 만들어진 상태였다. 청와대가 지금에 와서 보육이 ‘국가 책임’이 아니라 지방교육청의 의무사항이라고 발뺌할 요량이었다면 왜 당시에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안 수석의 발언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이 대선 전은 물론 대선이 끝난 뒤에도 “0~5살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느니 “보육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는 등의 약속을 철석같이 한 것을 상기하면 참으로 허탈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이 이런 식의 책임 떠넘기기를 되풀이하니 국정은 계속 꼬이고 나라는 더 큰 혼란에 빠져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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