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건설 현장의 추악한 비리 단면이 드러났다. 9일 경찰청이 발표한 경북 청도군 송전탑 반대 주민 ‘돈봉투’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 켜켜이 쌓여 이미 일상이 돼버린 비리 사슬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송전탑 현장에서는 돈을 주고받는 비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 듯하다. 공사현장에서 ‘갑’이라 할 한국전력 직원들은 시공사로부터 명절 떡값이나 휴가비 명목으로 해마다 수백만원씩 받아왔다고 한다. ‘을’의 위치인 시공사는 이 돈을 마련하려고 가공의 직원 수십명의 급여 명목으로 다달이 1000만~2000만원씩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렇게 만든 돈이 2009년부터 13억9000만원이다. 돈봉투 사건이 불거진 현장 한 곳에서 이 정도였다면 다른 공사현장 수십 곳은 또 어떨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관할 경찰서장은 이런 비리 사슬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무마하겠다며 수천만원을 지원해달라고 한전 쪽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전 직원들이 시공사를 통해 가욋돈을 마련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원만한 공사 진행’을 위해 단계마다 돈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한 관행으로 여겼으니 주민들에게 돈봉투를 돌릴 생각도 했을 것이다. ‘주민 약값’ 명목으로 수천만원이 오갈 정도라면 평소에도 경찰과 한전 사이에 돈이 오갔을 개연성도 있다. 수사가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갈등해결 방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경찰은 경남 밀양시에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하면서 공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청도군 삼평1리 현장에선 경찰서장이 수백만원씩 든 돈봉투를 공사 반대 주민들에게 돌리려 했다. 밀양에서도 한전이 주민들을 매수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터다.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힘과 꼼수만 앞세우는 모습들이다. 이런 행태는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사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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