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다음달이면 활동 시한이 끝나는데도 의제 설정도 못하는 등 겉돌고 있다고 한다. 사용후 핵연료란 핵발전소에서 태우고 난 핵연료를 말한다. 방사능이 세고 온도가 높아 10만년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물질이다. 핵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나오는 핵폐기물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 핵무기 원료가 들어 있어 민감하기도 하다. 일찍이 안면도와 부안에서 핵폐기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겪은 터여서 사용후 핵연료만큼은 공론화를 거쳐 처리나 처분 방법을 정하자고 한 지 10년이 됐다. 핵발전소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의 양이 1만3000여t에 이르러 8년 뒤에는 포화 상태가 된다는 문제도 시급하다.
공론화에서 사실상 손을 놓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족한 공론화위는 시민의 참여와 숙의, 투명한 운영을 통해 이런 시대적 난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리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시한 종료를 앞둔 결과는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사용후 핵연료를 자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폐기물로 보아 깊은 땅속에 묻을 것인지조차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를 구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논쟁적이고 복잡한 주제다. 자원으로 보고 재활용한다면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현실성이 있는지, 핵확산 가능성은 없는지를 깊이 따져야 한다. 또 재활용에 앞서 중간저장시설을 어디에 지어 어떻게 운영할지도 논란거리다. 폐기물로 지층 처분하는 것도 전례가 없어 기술과 비용, 터 확보 등이 난제로 보인다.
애초 공론화위는 출범할 때부터 시민·환경단체 쪽 위원이 사퇴한데다 참여적 방식과는 거리가 먼 활동을 해왔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중간저장시설을 착공한다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일정에 맞춘 ‘짜맞추기 공론화’라는 비판도 받았다. 만일 공론화위가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관련 법에 따라 연말에 활동을 접는다면 가뜩이나 떨어진 원자력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을 성공적으로 마련한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은 모두 정책 수립 과정에서 지역주민, 이해당사자,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핵연료 포화까지 여유가 8년 있으니 이제라도 공론화를 제대로 해야 한다. 민주적으로 위원을 새로 뽑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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