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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세 모녀 눈물’ 닦아줄 수 없는 ‘세모녀법’

등록 2014-11-18 18:37수정 2014-11-18 21:18

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공과금과 함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 아홉달 만에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여야 간에 잠정 합의됐다. 지체된 시간도 아쉽지만 내용 또한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

개정안은 2000년 도입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큰 틀을 15년 만에 흔들었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에 각종 급여를 한꺼번에 주던 방식 대신,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급여별로 대상자 선정 기준을 달리 설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급여별로 대상 인원과 지급 액수는 늘어나지만, 개별 수급자 처지에서는 이제까지보다 기초생활 보장 수준이 후퇴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의 사례를 새 기준에 대입해 봐도 교육급여 정도만 새로 받을 수 있어, 빈곤층 복지의 확대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를 만드는 독소 조항들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 일할 능력과는 상관없이 성인이면 월 60만원가량을 벌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는 그대로다. 성인인 두 딸이 지병 등의 문제로 일할 수 없었던 세 모녀 가정과 유사한 상황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을 수 있다.

부양 의무자에게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실제야 어떻든 부양을 받는 것으로 ‘간주’해 수급 자격을 주지 않던 제도는 일부만 개선됐다.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높이고, 교육급여에서는 이를 폐지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관계의 변화 현실에

맞게 사위와 며느리는 부양 의무자에서 제외하거나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2012년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목숨을 끊은 사건도 부양 능력이 없는 사위가 부양 의무자로 인정된 게 원인이었다. 이처럼 불완전한 개선 탓에 수급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빈곤층이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복지단체 쪽은 추정한다.

세 모녀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는 ‘그들이 처한 실제 상황’이 어떤지 파악도 못하는 책상물림 복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이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맞춤형 복지’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지만, 여전히 소득 수준을 ‘추정’하고 ‘간주’하는 제도로 위기 현장을 어떻게 포착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살기 힘들면 이유를 직접 설명해 보라’는 식의 접근법부터 고쳐지지 않았다. 일단 빈곤층 복지의 문턱을 크게 낮추고 접근성을 높인 뒤 복지 누수 문제가 있으면 사후적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제2, 제3의 세 모녀는 또 눈물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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