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서는 외국 영리병원의 개설 요건을 낮추는 규칙 개정안을 21일 입법예고한다.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를 10% 이상 둬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 진료 과목별로 1명 이상만 두면 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관련 규제가 끊임없이 완화되면서 ‘무늬만 외국 영리병원’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쯤 되면 무늬까지 국내 영리병원인 셈이다.
애초 2002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 병원 설치를 허용한 것은 입주한 기업 직원 등 외국인의 편의가 목적이었다. 따라서 당시엔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후 야금야금 법령을 고쳐 2004년에는 내국인 환자도 진료할 수 있도록 했고, 2007년에는 국내 의료법인도 합작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번엔 가뜩이나 느슨했던 의료진의 인적 요건까지 대폭 완화했다.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면 외국 병원 도입의 숨은 목적이 처음부터 국내 영리병원의 길을 터주려는 게 아니었느냐는 의심마저 든다.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우리 의료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 병원을 짓게 해주자는 것이라면, 이렇게 국내 의료진 비율을 사실상 100% 가까이까지 늘리는 규제 완화는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서울대병원이 미국·유럽의 유수 병원들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연합 왕립병원을 위탁운영하기로 하는 등 우리의 의료 인력·기술·시스템은 세계적이다. ‘병원 수출’까지 하는 나라가 외국 병원 유치에 이토록 목맬 이유가 없다.
정부가 말하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라는 효과도 지난 10여년 동안 ‘0건’에 그친 실적을 놓고 재검토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과 같은 수준으로 먼저 규제를 풀었던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최근 중국 산얼병원 유치를 둘러싸고 웃지 못할 해프닝만 겪었다. 실패한 정책의 현실성은 돌아보지 않고, 실패를 핑계삼아 엉뚱한 방향의 규제 완화만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외국 영리병원이란 게 생기더라도 실상은 국내 자본이 국내 의료진으로 영리병원을 세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공산이 매우 크다. 정책 효과는 미미한 반면 부작용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전국을 포괄하는 8개 권역의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들어선다면 의료비 급증과 건강보험 토대 약화 등으로 공공 의료체계에 균열이 생기리라는 우려가 높다. 외국 영리병원의 근거 규정은 지금도 경제자유구역법 제5장 ‘외국인 생활여건 개선’에 들어 있다. 정부는 이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솔직하게 밝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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