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 쪽에 눈여겨볼 만한 일이 몇 가지 벌어졌다. 우선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물러나고 진웅섭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이 그 자리에 앉았다. 또 이경재 케이비(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사임하는가 하면, 은행연합회 차기 회장에 케이비 회장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내정됐다고 한다. 최 금감원장의 교체는 케이비 사태 처리가 어설펐다는 점에서 불가피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케이비금융지주 의장 사임과 하 은행연합회 회장 내정설은 그냥 보아넘기기에 찜찜한 구석이 많다. 한마디로 잘못된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리는 것 같다.
이경재 이사회 의장은 그동안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빚어진 케이비 사태 때 의장으로서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던 그가 사임하자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케이비금융의 엘아이지(LIG)손해보험 인수 건을 앞세워 사퇴를 압박했다는 따위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의장은 여러모로 보아 물러나는 게 맞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엘아이지손해보험 인수 건을 빌미로 그런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적절하지 않다. 금융당국이 지닌 인허가권을 활용한 나쁜 관치금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엘아이지손해보험 인수 문제는 그것대로 법규정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하 은행연합회장 내정설도 그렇다. 회장을 뽑는 은행연합회의 이사회가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금융당국을 통해 내정됐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사회 구성원인 은행장들조차 잘 모르는 가운데 무대 뒤의 금융당국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니 말이다. 더구나 하 전 행장 내정은, 정부가 케이비 회장으로 밀었으나 탈락한 데 대한 보상이란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 하 전 행장이 협회장에 적합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별개 사안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회장을 뽑는다면 은행연합회가 회원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치금융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법과 제도로 규율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만큼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의장의 사임 등을 둘러싼 이번 일들은 이것과 거리가 멀다고 본다. 이런 일이 이어지면 금융계의 자율성이 높아지지 못하면서 금융산업의 발전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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