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부터 만 1살 이하 영유아를 둔 저소득층 부모에게 기저귀와 분유 값 등을 지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고위험 임산부에게는 출산 진료비도 지원하기로 했다. 애초 지난 9월에 발표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는 빠져 있던 것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의 사업타당성 검토 과정을 거치며 되살아난 것이다. 이로써 저소득층에 분유·기저귀 값 등을 지원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약속은 지켜지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국고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48%)와 지방정부(52%)가 재원을 나누어서 부담하기로 했다는 데 있다. 대선 공약을 지킨다는 생색은 정부가 내지만 실상 재정부담은 지방정부가 떠안게 된 셈이다.
정부의 기저귀 값 예산 떠넘기기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무상보육 예산 지방정부 떠넘기기와 완전히 판박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대선 과정에서 되풀이한 ‘아기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느니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사실은 ‘지방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약속’이었던 셈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른바 ‘세 모녀 법’ 예산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이 법이 시행되면 늘어나게 되는 교육급여(수업료 및 교재비) 예산의 상당액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수정법안을 국회에 냈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부담해온 기초생활 보장 예산을 일선 교육청에 떠넘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올해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3%로 1991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53.9% 수준이던 지방재정 자립도는 해가 갈수록 더욱 떨어지는 추세다. 여기에다 농어촌 지역 기초자치단체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재정자립도가 사실상 10%를 밑도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국가가 지원을 확대해도 시원찮을 형편인데 오히려 부담을 떠넘기니 지자체들로서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복지 예산 문제의 본질은 돈은 부족하고 쓸 데는 많다는 것인 만큼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여당과 야당, 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허심탄회한 상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런 노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쉬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가뜩이나 형편이 쪼들리는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의 목을 쥐어짜면서 대통령 대선 공약을 지켰다고 자랑하는 입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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